'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해당되는 글 3건

잔상/달콤한 여운

발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끄적인 일기들. 몇편에 걸쳐 게시해보려고.

곱씹어볼겸... ㅎ






<사진은 꾸따비치근처, 마지막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발리 하늘>








혼자 이렇게 오랜 기간 여행을 한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화장을 하지 않고 지낸 기간도 거의 처음인것만 같다


13일 아침 한국을 출발해서 29일 아침에 돌아가다니. 정확하게 1516일의 여행.

 

도착한 날 꾸타에서 하루를 자고 일주일은 서핑스쿨에서 놀았고 우붓에서도 하루를 자고 

길리에서 삼일, 그리고 다시 꾸따에서 하루.

 

내가, 조금은 달라졌고 조금은 더 성장한 것만 같다.

 

-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지 환경을 더 보호해야지 하는 생각


- 고기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


- 더 많이 웃고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해야지 하는 생각


- 지금에 더 충실해야지 하는 생각


-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

 

모아서 써보면 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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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곱씹어볼 일
쌍용자동차라고, 들어본 적 있어?
나에겐 무쏘로 익숙한 이름인데... 아주아주 짧은 미니스커트에 빨간 힐을 신고 무쏘를 운전하는게. 내 스무살의 꿈이었거든. ㅎㅎ

당신에게는 쌍용자동차가 어떤 이름이야? 어쩌면, 아무 느낌이 없을수도 있겠다. 내가 무쏘만 떠올리던 쌍용자동차를 다시 만난 건, 2009년 여름이었어. 내게는 이름만 들어도 아픈 평택에,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데. 그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공장문을 걸어 잠그고 옥쇄파업을 하고 있다하더라고. 미안하게도, 내가 알게된 시점은 이미 회사관리자들이, 경찰들이 수도도 전기도 끊어버린 시점이었어. 유일하게 마지막 희망이 '의료진'을 들여보내는 거라, 의료인들에게 연락이 온 거 였어. 물론 내가 알기 전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의료인들도 있었을꺼야.

내가 갔던 2009년 여름의 쌍용자동차 공장 앞. 아이들과 노동자의 부인들은 울부짖으면서 '제발 물 좀 넣어달라'는데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은 그 문 앞에 떡 버티고서서, 물을 넣어주기는 커녕 언니들을 때리고 의사들을 약사들을 조롱하고. 경찰들을 용역뒤에 서서 우리를 희롱하고.

공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아니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걸어잠근 문 뒤에 갇힌 노동자들이 있는 공장. 그 공장을 오늘 새벽에 경찰이 쳐들어갈꺼라는 얘기를 듣고 같이 간 우리는 너무 괴로웠어. 공장 담 앞에서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우리. 내일 다들 출근해야하는 우리. 그치만, 저 사람들이 맞고 끌려나올때 악이라도 쓰고 소리라고 같이 지르고픈 마음.



그렇게, 2009년의 여름이 지났어.



친구 중에, 가까운 사람 중에 혹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어?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잘 상상이 안되는데.. 친구 중에 한명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걸 평생 가슴에 담고 가더라도..... 어떤 맘인지 내가 다 알순 없지만, 그럴 법도 할 것 같아.




그런데 있자나.
내가 갔던 그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벌써 22번째래. 열명이 넘어가는 사고가 나면 속보로 나오기 마련인데, 벌써 22명의 사상자가 생긴 이 공장에는 사람들이 신경을 안쓰고 있는 거 같아.

상주의 마음, 그 친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괴로울까.


나는 직접 아는 사람도 없고 나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들의 맘이 아프단 건 분명하고 내가 그 사실을 아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뭐라도 하고 싶었어.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이가 나를 생각하고 있단 게 느껴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했던 거 같아.


내가 어떻게하면 그 이들에게 그런 맘을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도시락을 싸려고 맘 먹었어. 내 도시락 맛없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정성을 보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 이거인 거 같아.


얼굴도 모르고 누가 몇명이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도시락을 싸간다는게, 것도 맛없는 도시락이라는게 참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분들이, 그 맛없는 도시락을 접하며 잠깐이라도 웃었으면 덜 외로웠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면, 내 맘이 이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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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2 21:40    

    비밀댓글입니다

잔상

1. '희망의 버스' 신청은 요기!

현재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다음까페에서 희망의 버스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2. 2003년 분신하신 배달호 열사.

 

2-1. 배달호 열사 관련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211112929

고 배달호 열사는 2003년 1월 9일 새벽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 사망했다. 1981년 두산중의 전신인 옛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1987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 노조 대의원과 노사대책부장, 민영화대책위원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인간의 꿈(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평전)] 소개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평전. 두산중공업 보일러 공장에서 집채만 한 보일러 패널을 주무르던 배달호는, 2003년 1월 9일 새벽, 단조 공장 옆 노동자 광장 한 귀퉁이에서 외로이 분신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튿날, 그의 월급봉투에 찍힌 돈은 단돈 2만 5천 원. 단지 자유롭고 인간다운 회사를 꿈꾸었을 뿐인 평범한 노동자는 왜 그리운 아버지, 원망스러운 남편,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가 되어야 했을까.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르포 작가 김순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모든 대기업의 노조에 대한 탄압과 그로 인한 한 평범한 노동자의 비극적 서사를 써내려 가면서도,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픈 꿈’과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았던 한 개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는다.

 

 

2-2.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배달호 열사 추모사.

12분짜리 영상인데요, 영상 꼭 봤으면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입어본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사내, 배달호 열사를 추모합니다.

http://klbs.org/vod_view.html?m_uid=2646

 

음향이 좋지 않아서, 추모사 전문 첨부합니다.

 

죽은 듯 서있던 나뭇가지 끝이 색깔이 변했다 싶었는데, 좁쌀만한
새순들이 종주먹을 쥐고 막 일어서는 참이었습니다.
그 작은 것들마저 살겠다고 일어서는 게 봄일텐데, 그 봄에게마저
화가나던 날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피었던건지 동백이 지는데, 붉은 꽃송이 모가지가 툭툭 끊어져
떨어지는데, 그 무심한 낙화마저 속상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늦은 밤 막차안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내하나 고개를 떨군채 졸고있고,
종점이 다가오는데 그게 또 서러운 날이 있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그 아이들이 나란히 새겨진 추모버튼 옆에, '배 달호를
살려내라' 검은 깃을 달다말고,그런거나 주렁주렁 달다말고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게 됐는데,어쩌자고 하늘은 저리도 맑은건지 그 푸르름마저
절망이던 날이 있었습니다.
무심하던 일상의 한 가운데서 밥을 먹다가도,테레비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버스에 흔들리다가도,문득 한숨처럼 걸려 넘어지던 이름
하나, 그를 아십니까?
호루라기 하나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그를 아십니까?
다들 세상이 변했다는데,너나없이 변화된 세상을 말하는데, 60년대를
살다가 전태일처럼 죽어간, 그를 아십니까?
18년을, 자기집 문지방을 넘나들던 시간보다 더 오랜시간 허덕거리며
드나들었을 공장 길목에,감사비도 아니고 기념비도 아닌, 그을린 자국하나
흔적으로 남겨진, 그를 아십니까?
50평생 단 한번도 푸른색으로 바뀌지 않던,이 멋드러진 21세기에도 붉은
빛만 껌뻑거리던 신호등 앞에서,붉게 검붉게 타오르던, 그를 아십니까?
병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고,이 견딜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죽음앞에,
'왜'가 아니라 '오죽 했으면'이 먼저 가슴을 치던, 그를 아십니까?
더는 밟힐 수가 없어, 도대체가 더는 당할 것도 없어, 마지막 일어서는
일이, 몸부림치며 일어서는 일이, 일어서 외마디 소리 친다는 일이, 제
몸뚱아리, 말라 비틀어진 몸뚱아리 장작개비 삼는 일밖엔 없었던, 그를
아십니까?
50년 그 긴긴 세월 그 몸뚱아리 하나로 살았으면서도,기름기 흐르게
먹여본적도,늘어지게 쉬게 한적도,한번도 잘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
몸뚱아리를 그예 횃불로 밝혔던, 그를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입어보는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지지리도 못난 사내,
그를 아십니까?
그 마지막 호사마저 분에 넘쳐,새까맣게 오그라붙어,타다만 비닐처럼
오그라붙어,그 마저도 64일을 꽁꽁얼어,변변히 갖춰입지도 못한 채 먼
길을 떠나는, 그를 아십니까?
50평생을 밟히고 채이고 내몰리기만 하다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는, 그를
아십니까?

 

다 태우고 마지막 한점까지 다 내주고 이제 그가 갑니다.
수십년 살 부비고 살았던 마누라에게 조차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가 갑니다.
살아서는 지구를 수 천 바퀴를 돈다해도 이 세상 어디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가 갑니다.
징계,가압류,전과자의 굴레를 이렇게 밖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이 모진
땅을 그가 떠나 갑니다.
권 미경의 곁으로 조 수원의 곁으로 신 용길의 곁으로 양 봉수의 곁으로
서 영호의 곁으로 최 대림의 곁으로 박 창수의 곁으로 또 한사람이
갑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
새끼들만 아니라면 수백번도 더 따라나서고 싶었을 그 길목 어디쯤을
날마다 서성이며 남겨질 사람.
가장이 버텨준 세상도 그렇게 버거웠는데,수많은 날들을 홀로 휘청거리며
버텨야 할 사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제 목놓아 울 수도 없을 황 길영 동지.
7평이라던가, 9평이라던가 그 좁아터진 집구석이 당장 오늘부턴 휑뎅그레
넓어져,앉았던 자리도 누웠던 자리도 빈 자리만 눈에 가득하고,코 고는
소리도 술주정 소리도,술냄새 발꼬랑내 마저 아득한 그리움이 되고 회한이
될 황 길영 동지가 남겨졌습니다.
투사도 아니었고 간부도 아니었고,그냥 남편의 뜻이 뭔지를 알기에 이
지난한 투쟁의 한 가운데서,견딜수 없는 슬픔의 바다에서 외롭고 처절한
사투를 벌여 온 황 길영 동지가 이제 아빠의 몫까지,아들의 몫까지 홀로
짊어져야 하는 가장으로 남겨집니다.

 

대구 지하철 청소 용역 아줌마들이,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손에 쥐고 죽었다던, 껌떼는 칼을 들고 있는 황 길영 동지의
모습을,아마 모르긴 몰라도 어느 백화점 계단 쯤에서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을 일한 회사에서 용역으로 내몰렸던 어느 식당 아줌마들
처럼,노동조합 앞에 천막을 치고 막막한 눈길로 앉아있는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저임금법이 뭔지도 모른 채 38만원 주면 38만원 받고 40만원 주면
40만원 받다가, '철의 노동자'를 '사랑은 아무나 하나'처럼 부르는
아지매들 틈에 섞여있는 그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업이니까 9시 까지 출근해도 된다는 집행부의 지침을 한달 째 어기며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수십년 습관을 못 버리는 어느 병원 청소 용역
아줌마들처럼, 새벽 댓바람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거들랑 잠깐 차세워
잘 지내시냐고 안부라도 물어주시구려. 태워 주시면 더할나위 없구요.
그리고 두 딸내미 선혜, 인혜.
그 아이들만한 보석을 준다 해도 안 바꾸었을 새끼들.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눈에 밟히고,가슴에 밟혀 가다가도 골백번을
되돌아보고 또 돌아볼 그 아이들.
백번의 열사보다 단 하나의 아빠가 아직은 더 절실할 아이들.
이 땅 여성노동자 70%이상의 삶이 그렇듯 머잖아 비정규직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그 아이들을,백화점에서든 마트에서든 보게 되거든,화끈거려
제대로 내딛지도 못하는 발바닥 먼저 헤아려 주시구려.
엄마땜에 앓는 소리 한번,힘들다는 투정 한번 부리지 못할 아이들의
어깨라도 한번 따뜻하게 두드려 주시구려.
마지막 결단의 순간까지 끝내 놓지 못했을,어쩌면 맨 앞에 놓고 싶었을
마지막 한마디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 주기 바란다'
그 유언은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아마도 그렇게 남아 떠돌게
될것입니다....


 

 

 

3. 김주익 열사.

 

3-1. 김주익 열사 추모사 (아래 기사에 추모사 전문있습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3364826

 

3-2. 김주익 열사 추모제 기사입니다. 추모사 전문이 있으니, 이 기사 열어서 위에 추모사랑 같이 보세요.

http://www.vop.co.kr/A00000006184.html

 

 

 

4.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문제로 2010년 단식하면서 쓰신 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7741&page=1

 

 

 

5. 소금꽃나무 김진숙, 그리고 85호 크레인

송경동 시인이 쓴 기고 글, 길지만 꼭 읽으세요.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0874

 

 

6. 그리고 지금,

6-1. 송경동 시인의 희망의 버스 초대글.

http://www.vop.co.kr/A00000395832.html

 

6-2. 배우 김여진의 희망의 버스 초대글.

http://www.vop.co.kr/A00000402147.html

 

 

6-3. 한진중공업 '밥심연대'

http://www.vop.co.kr/A00000402719.html


6-4. 희망의 버스 관련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73761&CMPT_CD=T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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